우리는 톨스토이의 『삶의 오솔길』 1권에서 종교와 인생, 죽음 등에 관한 톨스토이 철학의 통찰력을 살펴보겠습니다.
2. 이성적인 인간은 신을 인정해야 한다
신이 하늘에 계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또한 인간 안에 있다고도 합니다. 두 표현은 모두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천국, 즉 무한한 우주에 있고, 또한 인간의 영혼에 있습니다. 영적이고 분리할 수 없는 존재, 즉 자신의 개별적 육체 안에 있는 신이라는 존재를 감지하고, 살아 있는 모든 것 속에서 같은 하나님을 보면서 인간은 자신에게 묻습니다. 영적인 존재인 하나님은 왜 자신을 피조물, 즉 나와 다른 사람의 개별적인 육체 안에 가두었을까? 왜 영적인 존재는 통합체인데 자신을 분리해 자신을 그 안에 두는가? 왜 영적이고 불가분의 것이 분리하고 물질이 되었을까? 왜 불사의 존재가 인간과 결합했을까? 오직 그 사람만이 이 세상에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습니다. 「이 모두가 나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이런 사람은 말할 수 있죠. 「나는 신께 감사하며 이제는 의문이 없다」
우리는 신이라 부르는 존재를 하늘과 모든 사람 안에서 봅니다. 겨울밤에 하늘을 바라보고 총총한 별들을 보며, 끝도 없이 많은 별이 우리가 사는 지구보다 훨씬 더 거대함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별들 뒤에 있는 수백 수천 수백만의 별들은 훨씬 더 큽니다. 별들도 하늘도 끝이 없으니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기 내면을 본다면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을 그곳에서 감지합니다. 우리가 내면에서 어떤 것을 볼 때는 역시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러나 다른 것보다는 더 확실하게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그것을 통해 보더라도 우리 영혼에서 아직 더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보는데, 이는 하늘에서 보는 것보다 더 위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에서 보고 우리 내면의 영혼에서 감지하는 바로 이것을 신이라고 부릅니다. 언제나 모든 인류는 세상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힘의 존재를 믿었습니다. 고대에는 그것을 보편적 이성, 자연, 생명, 영원이라고 불렀고 기독교인은 성령, 아버지, 주님, 이성, 진리라 하죠. 보이고 변화하는 세상은 이 힘의 그림자와 같습니다. 신은 영원하므로 보이는 세상도 영원하고 그의 그림자도 영원합니다. 그러나 보이는 세상은 단지 그림자일 뿐입니다. 오직 보이지 않는 힘인 신만이 참으로 존재합니다.
하늘과 땅이 없어도 존재할 수 있는 실체가 있습니다. 이 실체는 고요하고 무형이고, 사랑과 이성을 그의 특징이라고 부르지만 그 존재 자체엔 이름이 없습니다. 그것은 무한히 멀고 또 무한히 가깝습니다. 한 사람에게 신의 존재를 어떻게 아는지 묻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해돋이를 보는데 촛불이 필요합니까?」 만일 자신을 위대하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신의 높이에서 사물을 보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사람은 세상이 모든 방향으로 무한하고, 영혼은 스스로 자각하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우리가 신이라 부르는 존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 귀머거리, 벙어리, 장님으로 태어난 소녀가 촉감으로 읽고 쓰기를 배웠습니다. 그녀의 선생이 신에 관해 말하자 그 아이는 항상 그 존재에 대해 알았으며, 다만 그 명칭을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3. 신의 의지
우리의 이성이 신에 대해 아는 것은 어머니 품에 안긴 아기가 느끼는 친밀감보다 더 못합니다. 아기는 누가 그를 안고 따뜻하게 지키며 먹이는지 모르지만, 누군가가 그 일을 하는 것을 압니다. 더구나 아기는 그 사람과 누구의 힘 안에 자신이 있는지 알며, 또한 그녀를 사랑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신의 뜻을 더 이룰수록 신을 더 잘 알게 됩니다. 만일 사람이 신의 뜻을 이루는 데 완전히 실패하면, 그가 신을 잘 알고 기도한다고 단언하더라도 그는 신을 전혀 모릅니다. 어떤 것을 알려면 더 가까이 가야 하듯이, 신에게 가까이 갈 때 신을 알 수 있습니다. 신에게 가까이 가는 것은 오직 선행에 의해 가능합니다. 선한 삶에 사는데 더 익숙해질수록 신을 더욱 빈틈없이 알게 될 것입니다. 신을 더 잘 알 때 그는 동료 인간을 더 잘 사랑합니다. 이것은 서로 연결됩니다. 우리는 신을 알 수 없습니다.
신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신의 율법과 신의 뜻이며, 이는 신약 성경에서 우리에게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알면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며, 신께서 율법을 주셨지만 우리는 율법 제정자를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아는 것은 신께서 우리 삶에 주신 율법을 실천해야 하며, 신의 율법을 이루면 우리 삶이 어느 정도 더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삶에서 어떤 일이 이루어진 걸 느끼겠지만 그는 누군가의 도구입니다. 만일 사람이 누군가의 도구라면 이 도구로 일하는 누군가가 있습니다. 이 누군가가 신입니다. 어떻게 내가 이전에 이 단순한 진리를 알지 못했는지 놀랍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과 삶의 배후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다.
세상이 존재하는 이유와, 우리가 왜 세상에서 끓는 물의 표면에 떠오르는 물거품처럼 터지고 사라지는지 아는 어떤 존재가 있습니다. 그래요, 어떤 것이 이 세상에 작용하고 있지요. 어떤 것이 이 모든 생명체에 작용하고, 나와 나의 삶에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아니면 왜 태양과 봄과 겨울이 있을까요? 왜 이 고통과 태어남과 죽음, 선행과 범죄가 있을까요? 왜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이 모든 개별적인 생명체가 그토록 열심히 생명을 지키고 힘껏 살아가며, 살아가려는 열정이 가슴속에 강하게 자리 잡은 창조물이 있을까요? 이 창조물의 삶이 다른 어떤 것들보다 나를 더 확신하게 합니다. 어떤 목적을 위해 이 모든 것이 필요하고, 이 목적은 합리적이고 선하지만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나의 영적인 자아는 내 몸과 같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내 몸에 있지만 자기 뜻이 아닌 더 높은 어떤 뜻에 따릅니다. 이 더 높은 의지를 우리는 신으로 이해하고, 신이라고 부릅니다.
신은 경배나 찬양을 위한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은 오직 신에 대해 침묵하고 섬길 뿐입니다. 사람이 노래하고 큰 소리로 반복해서 다른 이들 앞에서 「주여, 주여」 한다면 그가 신을 찾지 못한 걸 알아야 합니다. 신을 발견한 자는 침묵을 지킵니다. 악한 행위에서는 신을 느끼지 못하고 신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구원은 항상 오직 한 가지 안에만 있죠. 확실한 것은 신에 관한 생각을 멈추고 오직 신의 율법을 생각하고 완수하며 모든 사람을 사랑하면 의심이 사라지고 신을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