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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황혼기에 프레드릭 더글러스는 미국 연방 내각에서 일한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되었으며, 아이티 공화국의 장관직을 역임했습니다. 그는 노예 해방 선언서의 최종 반포와 미국 노예제도의 종식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노예 폐지론 정치 운동의 발흥에 크게 공헌하였습니다.그는 비교적 평온한 6년을 투카호에서 보냈고 그의 할아버지가 지켜보는 가운데 체사피크 만의 해안 근처에 있는 들판에서 놀았습니다. 이 목가적인 삶은 그 나이 또래의 농장주 아들에게 개인 노예로 배정되면서 끝나게 됩니다. 그는 농장 주인의 절대적인 통제 아래 속박과 고역에 시달리면서 미래의 삶이 어떻게 될지 곧바로 깨닫습니다. 자유의 길은 그가 12살 때 다른 농장에 옮겨지며 드러납니다. 그곳 주인의 아내 소피아 올드는 그에게 몰래 읽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했죠. 노예를 교육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됐었습니다. 프레드릭은 약 7년간 휴 올드의 집에 살았습니다. 진작 알파벳을 배운 그는 읽는 법도 배우기로 결심합니다. 마을의 백인 친구들에게 독서 수업을 받는 대가로 자신의 음식을 주었습니다. 프레드릭 더글러스는 구두를 닦아서 번 돈 50센트로 조지 워싱턴과 벤자민 프랭클린 대통령, 소크라테스의 연설을 수록한 정치 에세이와 시 모음집 등이 실린 매우 유명한 교과서 『미국인 웅변가』를 구매합니다. 이 책은 노예 주인과 노예 사이의 철학적 대화를 담고 있는데요. 노예는 노예제에 관해 주인이 주장하는 각각의 논점을 반박하고, 결국 그를 풀어주도록 주인을 설득합니다. 이 중요한 책은 프레드릭이 노예제 반대 관점을 분명히 표현하도록 도왔습니다.1845년 후반, 늘 목격해온 주변 노예들의 비참함에 마음이 아팠던 그는 다음과 같이 씁니다. 『나는 볼티모어 필포트 거리 맨 아래 있는 케너스 부두에 앉아, 사슬에 묶인 채 배를 타고 뉴올리언스로 가는 남녀를 보았고 지금도 그들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프레드릭은 강둑에 서서 신의 구원을 빌었던 일을 회상하며 탈주를 다짐합니다.7월 4일을 맞아 그의 말과 함께 오늘 방송을 마칩니다.「신이여 기쁜 날 온 세상에 속히 오게 하소서! 그들의 지독한 사슬에서 풀려날 때, 억압은 짐승처럼 비열히 무릎 꿇으리. 더 이상 짐승처럼 폭정의 멍에를 메지 않으리. 그날은 오고 자유가 지배하리니. 약탈당한 권리, 그들에게 되돌아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