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렇게 하려면 이 전부, 즉 이 무한하고 전능한 에너지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우린 새로운 복잡성에 직면합니다. 순수한 이성과 베단타는 우리가 종속적이며 이 움직임의 한 측면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움직임은 그 자체가 아닌, 종속적이며 시공을 초월한 위대한 안정성인 부동자의 한 측면입니다. 부동자는 불변이고 무궁무진하며 이 모든 작용을 담고 있지만 작용하지 않고 에너지가 아닌 순수한 존재입니다.』
『운동 자체에서 이것이 사실임을 보여주는 건 쉽지요. 거기에 안정된 것은 없습니다.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은 움직임의 일부이며 작용 에너지의 표현으로 우리 의식에 영향을 주어 정지한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에게 땅이 정지된 것 같고, 우리가 여행하고 있는 기차가 달리는 풍경 속에서 정지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무한, 영원한 시간, 끝없는 확장입니다. 순수한 이성은 더 나아가 시간과 공간에서 자신의 무채색의 엄격한 빛을 바라보며 이 두 가지를 우리 의식의 범주이자 현상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결정하는 조건임을 지적합니다. 우리가 존재 자체를 바라보면 시간과 공간이 사라집니다.』
『우리에겐 정의할 수 없는 순수한 존재나 작용 중인 정의할 수 없는 에너지란 두 가지 선택뿐입니다. 후자만 사실이라면 안정된 기반이나 원인 없이, 에너지는 행위, 즉 움직임에 의해 생성된 결과이자 현상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존재가 없거나 영원한 현상 행위, 업, 운동의 속성만으로 존재하는 불교도의 무를 갖게 됩니다. 이것은 순수한 이성을 주장하며 내 인식을 충족하지 못하고 근본적인 견해와 모순이니 그럴 수 없지요. 그것은 허공에 매달린 채 지지물도 없이 오르막의 끝이 갑자기 끊어진 계단으로 우리를 데려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