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찬가지로 모든 경전은 우리에게 깨달음을 얻으라고 강조하며, 우리의 불성을 보면 모든 죄가 씻겨나갈 것이라고 합니다. 태양이 떠오르면 어둠이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게 간단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조상에게 물려받은 죄가 있다고 하고, 불교에서는 전생의 업이 끝없이 쌓여있다고 하는데 [...] 선행으로는 이를 씻어낼 수 없습니다.[...] 올바른 방법으로, 신의 빛을 사용해야 해요.
나는 스승과 법문, 깨달음을 얻는 진짜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생명 없는 불상에 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요. 그렇게 난 그것을 찾았죠. 많은 분투와 수련, 노력 끝에 그것을 찾았습니다.
나는 부처님이 발견한 것을 찾았습니다. 나는 예수님이 발견한 것을 찾았습니다. 노자, 공자, 플라톤, 소크라테스가 발견한 것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조건이나 속박, 기부 없이 기꺼이 여러분에게 제공하고자 합니다. 모두 무료로요. 내가 발견한 것을 여러분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여러분의 것이니까요. 여러분에게 무언가를 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열어보고 어디에 있는지 보게 도와줄 뿐이죠. 그러면 모든 행복을 찾고 모든 슬픔이 사라질 것입니다. 성경 말씀과 같아요, 『너희는 먼저 신의 왕국을 찾으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더해지리라』
마찬가지로 모든 경전은 우리에게 깨달음을 얻으라고 강조하며, 우리의 불성을 보면 모든 죄가 씻겨나갈 것이라고 합니다. 태양이 떠오르면 어둠이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게 간단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조상에게 물려받은 죄가 있다고 하고, 불교에서는 전생의 업이 끝없이 쌓여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자기 마음의 노력으로는 결코 씻을 수 없습니다. 자선으로는 씻을 수 없죠.
선행으로는 이를 씻어낼 수 없습니다. 예수상이나 불상에 절하는 것으로는 죄를 씻을 수 없습니다. 올바른 방법으로, 신의 빛을 사용해야 해요. 내재한 천국으로 지옥의 어둠을 없애는 겁니다. 우리는 자기 불성을 이용하여 우리가 부처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부처님만이 부처가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부처입니다. 나는 그것을 알아냈고, 여러분도 직접 발견하고 싶다면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죠... 모두 언급했지만 다시 말해야겠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길, 『오늘 내가 하는 일을 너희도 장차 더 크게 할 수 있다』 『나 혼자만 이 모든 기적을 할 수 있고 너희는 절대 할 수 없다』라고 말하지 않았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너희도 할 수 있다』 했어요. 이것이 바로 위대하고 자유로운 태도입니다. 부처님은 『내가 부처가 되었으니 너희도 모두 성불하리라』라고 하셨죠. 올바른 법문을 따르면, 그건 과학 연구와 같아서 모두가 똑같은 일을 하면 똑같은 결과를 얻을 겁니다.
2 더하기 2는 4처럼요. 부처님이 성불했으면 우리도 성불할 수 있다고 했는데 왜 안 될까요? 왜 우리는 되지 못할까요? 예수께서 『내가 한 것을 너희는 더 잘할 수 있다』 했는데, 왜 시작하지 않죠? 모두가 그렇게 위대해지고 싶지만 할 수 없죠. 왜죠? 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식과 지혜가 부족합니다. 우리가 방법을 안다면 할 수 있습니다.
복잡한 인간의 내부 조직을 수술하는 법을 배운 외과 의사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와 함께 배우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와 같은 전문가가 되겠죠. 혹은 차를 수리할 때도 일반인에겐 차를 열면 너무 복잡한 것을 압니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아무것도 만질 엄두도 못 냈어요. 하지만 전문가는 그냥 열어서 여기저기 만지고 나사를 풀고 조이니 아무 문제가 없죠. 이처럼 전문가에게 배우면 우리도 차를 수리할 겁니다. 부처님의 법문을 배우면 우리도 부처가 될 수 있죠. 그리스도가 배운 것을 배우면 위대해질 수 있어요. 논리적이고 과학적이죠.
부처가 되고 깨달음을 얻는 것에는 신비로운 것이 없어요. 히말라야에 갈 필요도 없고, 머리를 깎거나 다른 옷을 입을 필요도 없어요. 이미 그 옷을 입은 분은 계속 입어도 문제없습니다. 청바지를 입고 싶으면 계속 입으면 됩니다. 청바지를 입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머리가 그 정도 길어도 아무 차이가 없어요. 삶에서 다른 계획을 준비하는 것은 취향과 생활방식의 차이일 뿐입니다. 누군 긴 머리를 좋아하며, 누군 짧은 머리를 좋아하고 누군 더 짧은 걸 좋아해요. 누구는 승려가 되려 하고, 누구는 수녀가 되고 싶고, 누구는 의사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천국은 우리의 내면에 있기에 누구나 내재한 천국이 있습니다. 불성은 우리 내면에 있습니다. 누구나 있고 찾을 수 있죠. 이것은 여러분도 즉시 찾을 수 있다고 나는 장담합니다. 원하는 순간 얻을 겁니다. 그렇게 빨라요. 이 휴지 한 장을 가지고 코를 푸는 것처럼 아주 빠르고 쉬워요. 하지만 이 불성, 즉 부처님의 씨앗에 매일 영양을 공급해야 해요.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이 농사를 짓고, 씨앗을 심고, 씨앗을 뿌리고, 매일 물을 주고 자랄 때까지 돌봐야 하는 것처럼요. 똑같은 겁니다. 우리 안에는 부처님의 씨앗이 있고, 그 씨앗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비옥한 땅에 뿌린 다음, 물을 주면 자랄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불성을 알 수 있지만, 얼마간 수행한 후에 부처가 될 것입니다. 이해하겠어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바로 대단한 부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무지가 너무 크고 이미 오랫동안 우리 안에 박혀있었기 때문에 습관, 자신 없는 생각 등 무지를 씻어내는데 아주 오래 걸립니다. 우리는 자신을 믿지 않죠. 사람들이 무엇을 하라고 하며,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며 죄가 있고 이런저런 존재라고 듣는 데 익숙하죠. 하지만 깨달음을 얻고 나면 머릿속이 맑아지고 우리가 얼마나 위대한지 경험하게 됩니다. 더 자신감을 가지죠.
우리는 관음법문을 수행하면서 날마다 우리가 진정한 부처임을 알게 됩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와 같고 신과 같다는 것을요.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셨으니까요. 하나님은 사람을 노예로 만들지 않았고, 하나님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우리와 하나님은 본질이 같아요. 유일한 차이점은 우리가 그것을 찾느냐 못 찾느냐죠. 신은 모두를 평등하게 만드셨는데 어떤 사람은 그걸 발견하고 그리스도와 부처님처럼 위대해졌어요; 어떤 이는 그걸 찾지 못해 평생을 어둠 속에서 기어다니고 있습니다.
이 카운티는 어디를 가든 성인의 이름만 보이죠: 산타클라라, 세인트조셉, 샌프란시스코 등요. 그리고 나는 성인의 도시에 살고 있어 정말 행복하며 성자의 모임인 성자회에 합류하길 요청합니다. 깨달음을 얻으면 그럴 수 있습니다. 성자는 깨달은 사람, 즉 성스럽고, 덕이 있고, (내적 천상의) 빛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압니다. 그들은 부처님을 압니다. 산스크리트어 『보디사트바』는 깨달은 사람, 즉 성자를 뜻합니다. 이 용어를 번역하지 않으면 불교와 가톨릭의 차이를 느낍니다. 하지만 번역하면 모두 성인, 즉 깨달은 존재를 의미합니다. 깨달은 사람에 대한 중국어는 『성인』으로 성자를 뜻하기도 합니다.
성인은 성자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같은 것을 언급합니다. 하지만 일부 용어를 번역하지 않으면, 다른 종교에 대해 회의적으로 됩니다. 『부처』 처럼요. 부처는 깨달은 스승 또는 구루입니다. 그래서 번역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와 달라 보여요. 『그리스도』는 메시아, 즉 깨달은 스승을 의미하죠. 하지만 우리는 번역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며, 번역하지 않고 고타마 부처님이라 부르죠. 고타마 그리스도 또는 예수 부처라고 부르면 아무도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언어가 때론 많은 문제를 일으키죠.
이제 그만하고 질문을 기다리겠습니다. 질문 시간에 답변도 하고 이야기도 많이 할 테니 시간을 좀 남겨두겠습니다. 무엇이든 자유롭게 질문해 주시고, 이미 질문지가 있으면 담당자에게 전해 주세요. 이 센터는 12시까지만 머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빨리 진행해야 합니다. 종이가 없나요? 그녀에게 주세요. 먼저 읽어요, 몇 개 읽어요. 당신이 읽어주세요. 당신 영어는 괜찮아요.
(채식인(비건)은 마늘 양파 부추를 먹지 못하는데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스승님) 이거 중국어예요? (네) 이건 중국어입니다. 질문자는 『비건식을 하면 마늘과 양파는 왜 먹을 수 없나요?』라고 묻습니다. 『술』이라고 쓰여 있나요? (부추요) 부추가 뭐예요? 아, 술을 넣은 채소군요. (오신채입니다) 네? (다 똑같아요. 양파, 마늘, 부추는 모두 오신채에 속하죠) 『술 채소?』 (부추요) 채소에 술을 넣는다는 뜻인가요? (아니요 그건 일종의) 그것은 오신채에 속하는군요. (네 오신채 가운데 하나죠. 맞습니다)
네, 오신채는 다섯 가지 매운 향신료를 뜻합니다. 마늘과 양파, 부추과처럼 매우 강한 향신료입니다. 동양에서는 진정한 비건이라면 양파, 마늘, 부추 등 부추과에 속하는 오신채를 먹으면 안 된다고 믿습니다. 이제 이 중국인이 그 이유를 묻는군요. 내 생각에는 이것은 동물 주민을 죽인 것이 아니기에 먹을 수 있어요. 그러나 불교와 고대 힌두교 교단의 경전에 따르면, 마늘, 양파 등을 먹으면 나쁜 냄새와 악취가 나고 악마가 와서 입술을 핥고 싶어 한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이 힌두교 경전과 불교 경전에 나오는 설명입니다. 또한 마늘과 양파는 인간의 정욕을 자극해 지금보다 더 흥분하게 만들어요. 따라서 불교 승단의 비구와 비구니는 평온하게 있으려면 이것을 먹으면 안 됩니다. 그게 이유입니다. 이제 일부 불교 재가자는 이것을 먹지 않으면 그다지 흥분하지 않는다고 여기죠. 그것이 오신채를 먹지 말라는 계율의 의미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평범한 사람이고 비건을 하려는데 그것 없이는 할 수 없다면 천천히 끊어도 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끊고 싶다면, 오신채를 끊으세요. 원치 않으면 천천히 끊거나 가끔 먹을 수 있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마늘과 양파를 먹을 때 냄새가 너무 심해서 어떤 동료는 참지 못하죠. 그렇지 않나요? (네) 네, 그것도 또한… 그러면 안 먹는다고 해도 어쨌든 다들 행복하죠, 하지만 마늘과 양파는 좋은 약효가 있어요. 감기에 걸리면 양파주스를 마시고 양파 수프를 먹을 수 있죠. 그리고 때때로 혈액을 정화하고 싶다면, 마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아플 때 먹으면 그것엔 아무런 해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