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것은 빠른 해탈을 가져오는 고대 법문이에요. 하지만 그때에도 끈기가 있어야 했어요. 매일 명상해야 했죠. 나도 여러분에게 빨리 입문하고 집에 가서 텔레비전만 매일 보라고 하지 않죠. 열심히 명상해야 해요. 나도 매일 명상해요, 부처님도 매일 했어요. 이것은 빠른 길이 아니고 깨달음을 잠깐 맛보고 오랜 시간 물을 주고 키우는 방법이에요. 그러니 게으른 길이 아니죠, 절대 아닙니다.
(스승이 되면 물건을 다른 것으로 변하게 하는 등의 신통력을 개발할 수 있습니까?) 모두가 작은 재주인 신통을 좋아하지요. 물건을 다른 것으로 바꾼다고요? 당연히 됩니다. 그런 건 아이들 놀이죠. 그걸 배우고 싶나요? 어떤 마술사라도 돼요, 꼭 큰 스승일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필요하다면 큰 스승도 할 수 있죠. 보여주기 위해 하진 않아요.
어울락어(베트남어) 군요. 『내세가 있는지 말해주실 수 있나요? 친절하고 정직한 이들이 왜 계속 힘들게 살까요? 나쁜 이들은 계속 행운과 행복을 누리는데요? 집에서 계속 수행하면 내세는 좋아질까요?』 예, 내세는 있어요. 영적으로 수행하면 자신의 전생과 미래생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 관음법문을 수행하게 되면 더 이상 내세는 없을 겁니다. 여러분은 불국토(신의 왕국)에 가게 되고 윤회하지 않게 됩니다.
두 번째 질문은: 『왜 친절하고 정직한 이들이 여전히 불행한 상황을 맞을까요?』 그것은 과거 생에 그들이 친절하고 정직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이 세상에 사는 이들은 한 생만 사는 게 아니고 때론 많은 전생이 있었어요. 그것을 잊었고 자신들의 과거 생을 못 봅니다. 또 때로는 뒤에서 부정직한 일을 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거예요. 겉으로는 정직해 보여도 그들 안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몰라요. 그런데 영적 수행을 하면 누가 선하고 악한지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영안으로 그것을 볼 수 있게 되니까요.
세 번째 질문은: 집에서 계속 수행한다는 것이지요. 관음법문을 수행하지는 않지만 오계를 지키면 다음 생은 좀 좋아질 거예요. 인간으로 태어날 것이고 더 행복하고 더 부유할 거예요. 그런 식이지요.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죠. 보장된 것은 아니에요. 과거 생의 업이 이생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니까요. 이번 생에 선하고 정직하다고 해도 여전히 비참하고 끔찍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어요, 전생의 업 때문에요. 그러니 다음 생은 없는 것이 낮지요. 빨리 와서 나와 함께 명상법을 배워서 하루에 두 시간 반을 명상하게 되면 다음 생에 다시 오지 않을 거예요. 불국토(신의 왕국)에 가서 지내니 그게 더 안전하죠.
내가 통역하길 원하나요? (예) 그래요? 질문이 얼마나 더 있나요? (질문이 많습니다) 밖에요? 아, 좋아요. (아뇨, 다 여기 있습니다) 첫째는 어울락어(베트남어) 질문인데요. 첫 질문은 어울락(베트남) 사람이 묻는 것으로, 『내세가 있습니까?』 입니다. 난 그렇다고 답했지요. 수행하면 그걸 볼 수 있어요. 우리 전생과 미래 생을 보게 되지요. 하지만 관음법문을 수행하게 되면 내세가 보이지 않습니다.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지 않게 되니까요. 우리는 불국토로 가서 신과 함께 살게 돼요. 그에게 그렇게 말해줬죠. 그러자 그가 또 묻기를, 『아주 착하고 덕 있는 사람이 왜 여전히 재난을 겪고 불행한 상황을 만날까요?』 내가 그렇다고 했는데, 전생에 별로 덕이 없었고 전생에서 온 업보 때문이죠. 혹은 어쩌면 사람들이 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고결한 행동을 안 했겠지요. 우리는 모르지만, 신이나 부처님은 알아요. 나는 그렇게 답했어요. 몹시 나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번 생에 공덕이 많고 행복한 경우는 전생에 약간의 좋은 씨와 약간의 공덕과 선한 덕을 뿌린 거지요. 자, 세 번째 질문은, 『재가자로서 수행을 계속한다면 다음 생에 더 잘 살 수 있나요?』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죠. 왜냐하면 저장된 업을 청소하지 않으면 미래에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까요. 우리 삶에는 이번 생의 업뿐만 아니라 과거 생의 업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모든 업을 씻지 않으면 내세에 우리가 무엇이 될지 모릅니다. 최선은 다음 생을 살지 않는 거죠. 그러니 관음법문을 수행하여 곧장 집으로 가서 부처와 신과 함께 하세요. 그러면 아무것도 걱정할 게 없어요. 우린 실제로 거기 가서 살죠.
(질문이 16개 남았습니다) 그래요, 뭔데요? (시간이 안 되는데요) 시간이 모자라요, 어떻게 할까요? (한 장에 한 질문만 받죠) 뭐라고요? (장당 한 개요) 한 장에 한 질문이요. 선택하기 어렵군요.
좋아요, 마지막 질문, 『무엇이 자기 안의 어린 자아와 지적 자아, 상위의 신적 자아 세 가지를 통합할 최고 방법이죠?』 아! 관음법문이죠. 이것이 자신을 통합하고 모두 합쳐서 하나 되게 하는 최선의 방법이에요.
그런데 여기 문제가 있어요. 질문은 많은데 시간이 다 됐거든요. 물론 더 있을 수 있지요. 12시까지요, 괜찮죠? 하지만 12시 전에는 모두 끝내야 해요. 누군가 입문을 원하거나 질문할 수도 있죠. 입문식을 다른 날로 미룰까요? 오늘은 질문을 받고요? (아니요) 싫다고요? 오늘 입문을 원하나요? 내일 돌아와도 똑같습니다. (예) 내일 올 수 없나요? (못 옵니다) 왜요? 내일 못 오는 타당한 이유가 있나요? (너무 늦을 수도 있어요) 너무 늦는다고요? (예) 이해해요. 입문을 원할 때는 어제 했기를 바라죠. 하지만 질문은요? (내일 답하시면 안될까요) (오늘 밤에요)
모두 오늘 밤 하자고요. 좋아요, 몇 사람이나 입문을 원하나요? 그냥 내일 하면 안 될까요? 약속할게요. 오늘 밤 죽을 사람은 없어요. 내일까지 보호해 줄게요. 이건 멋지네요. 결정이... 어렵군요. 2시간 반밖에 없는데 충분치 못할 수도 있어요. 내일 낮에 우리 센터로 오면 어때요. 낮에 시간이 있나요? (아뇨, 스승님은 어울락인(베트남인)과 만나야 해요...) 내일, 아 그래요. 내일은 내가 바빠요. (오전 10시 30분에) 그럼 그다음 날인 월요일이 여전히 연휴인데요. 그녀가 머리를 흔드네요. 경찰이 나를 쫓아낼까 걱정되네요. 그가 기다려요. 12시면 나를 쫓아낼 거예요. 그럴 거예요. 오늘 질문하고 월요일 입문을 원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봐요, 하나밖에 없네요. 오늘 입문하고 내일 질문을 원하는 사람?
좋아요. 하지만 한 가지 약속해 줘야 해요. 오늘 여러분에게 입문을 시켜주면 여러분은 내일 또 와야 해요, 이유는 오늘 말해줄 게 많은데 시간이 없어 못 하니까요. 설명 없이 입문만 시켜줘야 해요. 알겠어요? 여러분이 혼란에 빠질까 걱정이 돼요. 내일이나 그다음 날 날 보러 오면 돼요. 그 후엔 안 와도 돼요. 여러분을 잡으려는 게 아니라 내 임무를 다 하려는 것뿐이에요. 그것도 괜찮아요? (예) 좋아요, 그럼 오늘 입문해요. 나가서 신청하세요. 다른 것은… 나가서 신청서를 쓰고 약간의 정보만 얻고 다시 오세요. 입문을 원하는 이들은 나가서 기본 정보만 얻고 오세요. 빨리 서두르세요. 시간이 없어요.
입문을 원하면 오늘부터 비건이 돼야 해요. 이제 말은 하지 마세요. 이제 질문에 답할 수 있겠네요. (정보를 얻을 수 있나요?) 물론이지요. (정말 감사합니다) 어제 모임이 있었는데 당신은 안 왔지요. 그래요. (저도 입문할 수 있나요?) 나이가 어떻게 돼요? (66세인데 계속 비건을 했고…) 비건할 수 있어요? (예) 좋아요! 나가세요. 내가 허락했다고 그들에게 말해요, 그러면 돼요. 무슨 일이지요? (사적인 질문이 있어요) 다른 날 하면 안 돼요? (다른 날요?) 짧은가요? (내면으로 여쭙겠습니다) 오늘 밤 답을 못 얻으면 내일 다시 오세요. (예) 아니면 내 숙소로 오세요. 자, 이제 질문과 답을 잘 들으세요. (스승님 이것도 있어요) 이것도요? 이제 질문과 답을 하려면 잘 듣고 말을 하지 말아요. 자정까지 입문식을 할 거예요. 있을 수 있나요?
『깨달음에 대한 첫 체험을 말해주세요. 어떻게 아셨나요?』 입문하면 알 거예요.
『저는 삶에서 많은 여행을 했는데 매번 저는 자연 속으로 여행했죠 -인적이 없는 곳까지도요- 마치 내면을 여행하는 듯한 거대한 힘을 느끼는 체험을 해요. 그게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뭔가 새로운 것을 경험한다는 뜻이에요. 그건 내면의 힘이죠. 그것도 좋아요. 하지만 조심해야 해요, 스승이 있으면 당신이 어디까지 갔는지 물어봐요.
자, 세 번째 질문은: 『제 취미는 돌과 광물인데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것도 깨달음으로 가는 많은 길 중 하나일까요?』 아니요, 당신이 돌이 돼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자신이 먹는 것이 또 생각하는 것이 자신이죠. 아주 많은 이가 반려동물 주민을 키우는데 그들은 반려동물을 닮아요. 그렇지 않나요? 견공들과 보호자가 비슷해 보이죠. 그러니 조심해요.
『이 세상에는 즉석 라면이나 즉석 주택이 만연하죠. 순간의 자기만족을 위한 즉석 입문이 생겨요. 이런 빠른 해결법은 사회적 초조함의 직접적 반영이고 또한 영광스럽고 찾기 힘든 섭리를 성취하지 못한 우리 무능력의 반영이죠?』 문득 깨닫는 것은 고대의 법문이에요. 중국에서는 그것을 돈오라고 부르죠. 즉각 깨닫는 방법이죠. 돈오란 바로 깨닫는 것이나, 즉각 깨닫는 것이며, 그것은 같은 것이죠. 오래전에 존재했어요. 부처님은 그것을 돈오라 불렀어요.
깨달음으로 가는 두 길이 있는데, 빠르게 깨닫는 방법과 오래 걸리는 방법이에요. 우리는 그것을 점오와 돈오라 부르지요. 즉 점진적인 길과 빠른 길이란 뜻이에요. 그러니 이것은 현대의 표준적 문명의 반영이 아닌 빠른 해탈을 가져오는 고대 법문이에요. 하지만 그때에도 끈기가 있어야 했어요. 매일 명상해야 했죠. 나도 여러분에게 빨리 입문하고 집에 가서 텔레비전만 매일 보라고 하지 않죠. 열심히 명상해야 해요. 나도 매일 명상해요, 부처님도 매일 했어요. 이것은 빠른 길이 아니고 깨달음을 잠깐 맛보고 오랜 시간 물을 주고 키우는 방법이에요. 그러니 게으른 길이 아니죠, 절대 아닙니다.
『왜 스승님은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으셨나요? 목적이 무엇입니까?』 아, 그것은 내가 승려이고 승려였었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기 때문이죠. 승려인 게 뭐가 나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