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ST: 지난 방송에서 로베르 뀔라 신부는 책 『메탈 시대』을 쓴 이유를 말했습니다. 오늘은 로베르 뀔라 신부가 자신의 채식 여정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R.C.: 제게 그건 결정이 아니었죠. 아마도 어떤 이는 자신이 채식인이 된 특정한 날을 말할 수도 있겠지요. 저는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어요. 점진적 과정이었는데, 세상의 식량 체계에 흥미를 느끼며 자신에게 말했지요. 누구나 조만간 그것을 자신에게 질문할 겁니다. 어째서 모든 곳에서 부가 넘쳐흐르는데 여전히 세상에는 기아가 있고, 기아로 죽는 아이들이 있는 것인가? 물론 세상에는 소위 가난한 나라와 부자 나라가 있습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장 지글러라는 스위스인의 질문이 있습니다. 그는 수년간 세계 식량 문제에 대한 유엔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세계 식량과 기아 문제 전문가인 장 지글러 씨는 아주 직설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죽는 모든 아이는 범죄입니다』 그는 범죄라는 용어를 쓰는데, 그 이유를 그가 말합니다. 『이것을 피할 수 있다. 확실히 피할 수 있는데 통치자들이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저는 이 식량 문제와 기아가 있는 이유 등에 대해 흥미가 생겼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 잠시 논리적으로 조사하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육류 산업과 어류 남획이란 하부 주제와 만납니다. 그렇게 되면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하며, 아마존이나 인도네시아 및 다른 곳들에서 우리가 그렇게 많이 듣는 삼림 벌채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이 특별한 인류 유산이며 우리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삼림을 대학살 하는 이유죠.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가 아니라도 라틴 아메리카의 브라질 등 여러 나라는 가령 집중적으로 콩을 경작하는데, 흔히 유전자 변형 콩이 문제를 악화시켜요. 그건 정말 이상해요. 이 콩의 용도는 브라질 국민이 먹는 게 아닙니다. 반대로 브라질은 빈곤이 심하고 기아가 심한 나라이지만, 그 식량은 우리 브르타뉴 지방에서 돼지 사육에 사용해요.
저는 이 육류 산업이 작용하는 방식을 알기 시작하며 자신에게 말했어요. 이제 그 생산품을 구입해 이 나쁜 산업을 승인하면 안 되며, 이 산업은 가능한 한 빨리 폐기되어야 한다고요. 당연히 육류 산업에 의한 생태적 피해뿐 아니라 동물들에 대해서도 생각했어요.
제가 동물들에 대해 다시 말하고, 또 정확한 실상을 말할 겁니다. 지금은 자료가 없지만 그 정보는 인터넷에서 누구나 볼 수 있고, 제대로 기억한다면 전 세계 경작지의 약 70%, 전 세계 식량의 70%를 사람이 먹지 않고 농장 동물 사육에 사용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거기에서 에너지 낭비와 기아는 육류만 없애면 쉽게 해결된다는 걸 알게 되죠. 물론 그 후에도 저는 동물에게 관심이 생겼으며 그러다가 동물 사육에도 관심이 생겼는데, 그 종류가 많진 않아서 돼지, 닭, 송아지 등이 있지요.
HOST: 교회의 역할은 그 인식을 전달해 동물들이 겪는 잔학행위와 공장식 축산에 의한 위협적인 기후 변화를 끝내는 것입니다. 세계 인구의 상당수가 기독교인이기에 이것은 극도로 중요한 역할입니다. 로베르 뀔라 신부는 이 문제에 관한 교회의 발전을 말합니다.
R.C.: 우리가 교회의 발전을 말하자면 그 근간은 2015년 공표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찬미 받으소서 회칙입니다. 그것은 창조의 개념을 분명히 재고하게 합니다. 결국 수백 년간 기독교에서 큰 문제는 창조의 개념이 너무 이론적이며, 우리가 일요일이면 말하고 했던 창조의 개념과 상관이 없었지요.
『나는 천지를 창조하고, 보이고 보이지 않는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그 기도와 우리의 일상행위를 연관시키지 못했어요. 이론일 뿐이었는데, 저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거기에 어떤 구체성을 부여했다고 봅니다. 그는 말하죠. 『들어봐요. 진실한 그리스도교인이고 하느님의 손길이 만물을 창조한 것을 믿고, 신의 사랑에서 만물이 나온 걸 믿는다면, 다시는 동물을 물건 취급하고 착취하고 고통을 줄 수 없습니다』
여기엔 일관성이 있지요. 그래서 저는 이 명백한 발전이 정말 기쁩니다. 교회 교리의 발전과 이러한 인식이 정말 기뻐요. 사실 생태적 위기가 교회를 밀어붙였고, 특정 정치인들과 우리에게 영향을 주어 이 문제를 모두가 인식하게 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이 인식이 기쁩니다. 전 세계 기독교인을 정말로 자문하게 만들 세 개의 구절을 읽겠습니다. 230항을 인용하며, 인용하는 동안 추가로 설명할게요. 이게 아주 흥미로운 걸 볼 겁니다.
『온전한 생태계』 그분이 말한 온전함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분은 만물, 즉 인간과 모든 피조물을 고려한다는 의미이고, 교황님은 여기에 더해 말합니다. 『만물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분리할 수 없지요. 『온전한 생태계는 또한 단순한 일상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분은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폭력과 착취와 이기주의의 논리를 타파하는 것을 통해』 그러니 그분이 분명히 육류 산업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세요. 『폭력과 착취와 이기주의의 논리』는 육류 산업에 대한 정확한 정의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R.C.: 완벽해요. 그러니 우리는 이 논리를 끝내야 해요. 그리고 계속합니다. 『그걸 기다리는 동안』 아주 흥미로운 구절인 『광란의 소비 세계』는 많은 사물의 남용을 말하며, 물론 동물제품과 고기도 포함됩니다.
그러니 『광란의 소비 세계는 모든 형태의 생명을 착취하는 세계입니다』 『모든 형태의 생명을 착취하는』 것은 오늘날 육류 산업의 완전한 정의로, 도축장과 축산업과 그 모든 것이 『생명의 착취』인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교황님이 마침내 『생명의 착취』가 왜 존재하는지 묻죠. 육류 산업이라고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그것도 포함된다고 생각하게 되죠.
R.C.: 그것이 첫 번째 인용이고 두 번째는 220항으로, 교황님이 보편적인 수준에서 하신 말씀인데, 『이 생태적 회심』은 강한 말로 보통 누군가 무신론에서 신앙을 가질 때 씁니다. 『이 생태적 회심은 우리가 다른 피조물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사랑의 인식을 포함합니다』
교황님은 남자와 여자는 분명 유일무이하지만 그들은 동물 가족의 일부이며, 더 넓게는 모든 피조물 가족에 속한다는 것을 주장하십니다. 게다가 저는 창세기 첫 장에 있는 이 구절을 언급하며 상기시킵니다. 아주 흥미롭지요. 『땅의 생물은 남자와 여자와 같은 날 창조되었다』 즉 땅의 동물을 창조한 것은 남자와 여자의 창조와 나누어지지 않은 같은 날이었으며, 물고기와 새들은 더 일찍 창조되었지요.
회칙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우리가 다른 피조물과 분리되어 있지 않고, 세상의 다른 존재들과 더불어 커다란 보편적 친교를 이루고 있다는 사랑에 넘치는 인식』 정말 훌륭하지요. 『커다란 보편적 친교』라는 말이죠.
이사야서에도 보게 됩니다. 이사야서 11장을 다시 보면 정확히 『커다란 보편적 친교』라고 쓰여 있어요. 『신자들은 자신의 우월성을 알지 못합니다』 교황님은 인간이 다른 동물 종보다 우월한 것은 『개인적 영광이나 무책임한 지배의 동기』에 있지 않다고 해요. 무책임한 것이 아닌 『다른 능력으로 자신의 신앙에서 나온 심각한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심각한 책임이 있어요. 만약 우리가 우주의 지도자라면, 우리가 만물의 영장이면 다른 피조물에 대한 심각한 책임이 있지요. 이것은 아주 분명하니 조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