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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행성에 대한 오래된 예언 시리즈: 예언 237부 – 이탈리아의 위대한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채식인)의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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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채식인)의 빛나는 그림들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예술가의 유명한 말처럼: 『그림은 진실을 입고 있는 모습이다』 다빈치의 상징적인 작품들이 현재 격동의 시대를 통해 우리에게 경고하고 인도하는 예언적 진실을 담고 있을까?

오늘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채식인)가 ‍글과 시각예술 작품을‍ 통해 전한 메시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총명한 다빈치의 글입니다.‍ 『조각품: ‍아! 내가 누구를 보는가? ‍다시 십자가에 박힌 구주』

여기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구세주께서 ‍주 예수로 육화하신 ‍것처럼 다시 오셔서 ‍중생을 위해 희생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십자가 처형의 ‍공포를 탄식하며 재림하신 ‍그리스도가 인류의 ‍엄청난 업보를 고통스럽게 ‍떠맡음으로 광범위한 ‍구원의 기회를 주기 위해 ‍여기 오실 것을 암시합니다.‍ 이 구주가 누구일까요?‍ 당시에 분명한 이유로 ‍자기 예언을 숨긴 ‍위대한 예술가는 자신의 ‍가장 사랑 받는 그림에 ‍단서를 남긴 것 같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채식인)은 ‍『그림은 진실이 입은 ‍겉모습』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마지막 날까지 ‍어디나 가지고 다녔다고 ‍알려진 세 점의 ‍그림이 있습니다. 『성 안나와 성 모자』 ‍『세례자 성 요한』 ‍그리고 유명한 ‍『모나리자』입니다.

먼저 『성 안나와 ‍성 모자』를 보면 ‍이 그림은 성 안나와‍ 그녀의 딸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묘사합니다. ‍많은 화가의 그림이‍ 이 인물들을 표현하지만‍ 다빈치의 작품은 ‍그 구성이 특이합니다.

‍기존의 제목과 달리 ‍이 그림을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채식인)가 예언서에‍ 기록한 인간의 죄악과 ‍연관시키면 ‍이 그림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가장 앞에는 대지의‍ 절벽 같은 부분이 있고 ‍세 사람이 ‍어린 양 주민과 함께 ‍그 끝에 앉아‍있습니다.‍ 주 예수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어린 양과 ‍놀고 있는 아기의 ‍모습입니다.‍ 둘 다 순수하고 천진함을 ‍나타냅니다. ‍가운데 있는 성모 마리아는 ‍아기를 보호하려는 분명한 의도로 부드럽게‍ 손을 뻗고 있습니다. 그녀의 발은 또한 아기와 ‍양 주민이 넘어지는 것을 ‍막는 위치에 있습니다. ‍다른 여인 위에 앉아 ‍불편해 보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아기들을 보호하려고 ‍계속 최대로 ‍손을 뻗고 있습니다. ‍이 두 여인은 ‍비율이 다릅니다.‍ 뒤쪽의 성 안나를 ‍약간 더 크게 그렸지요. 레오나르도는 왜 인물들을‍ 다른 비율로 그렸을까요?‍ 더 크게 묘사된 성 안나는 ‍아기에게 시선을 둔 ‍성모 마리아를 바라봅니다. ‍그녀는 고요히 미소 짓고 ‍성모 마리아뿐만 ‍아니라 그림 속의‍ 세 모습 모두를 받쳐주며 ‍안정성을 부여합니다.

가운데 묘사된 성모‍마리아는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며 어떤 어려움을 ‍겪더라도 순진한 아이와 동물 주민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상징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것이며 죽으면 ‍분명히 천국에 갈 것입니다. ‍그녀의 모습은 은은한 ‍빛 속에 표현되며 ‍근처엔 햇빛 아래 서 있는 ‍푸른 나무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생명에 대한 ‍지원과 신의 보호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배경에는 상당히 분리된 ‍‍흰 산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생명을 주는 색이‍ 없으며 완전히 다른 ‍환경으로 보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흰 산들은 ‍『모나리자』나 ‍『카네이션의 성모』‍같은 다빈치의 다른 ‍그림에도 나타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르네상스 시대의 ‍어떤 화가도 그림에 자연색을 사용한 걸 ‍생각해 보면 ‍이 현저하게 다른 풍경은 ‍완전히 의도된 것입니다.‍ 이 배경은 ‍심판의 때가 되면 ‍녹아서 대홍수를‍ 일으킬 빙하를‍ 묘사한 것일까요?‍ 이 그림에서 빙하는 ‍이미 흐르는 물에 길을 ‍내어주니 『홍수』가 이미 ‍시작된 것을 보여줍니다.‍ 인물들 앞에 있는 가파른‍ 절벽은 멸종의 벼랑, ‍즉 지금 우리가 직면한 ‍6차 대 멸종을‍ 상징할 수 있습니다.

‍모든 과학 연구를 통해 ‍평화로운 비건 생활이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압니다. ‍인간이 지구에서 살아온 ‍살생하고 고문하며 ‍부패하고 잔인하고 ‍탐욕스러운 방식이 ‍우리가 세계적인 멸망의‍ 경계에 있게 된 ‍현재 상태의 ‍근본 원인입니다. ‍이 그림이 미래세대에게 ‍자연재해와 업장의‍ 재난에서 자신을‍ 구하기 위해 고귀한 삶을 ‍살라는 다빈치의 ‍경고일 수 있을까요?

‍우리의 가장 사랑하는 ‍칭하이 무상사님(비건)도 ‍비슷한 관점을 ‍주장했습니다.

“우린 기후변화라는 ‍안건으로 이미 ‍수십 년간 논의했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사실, 기후변화는‍ 더 악화했습니다.‍ 오히려 지구는 기온이‍ 더 심하게 오르고‍ 빙하는 곳곳에서‍ 과학자의 예상보다 ‍더 빠르게 녹고 있습니다. ‍우린 여러 방법을 시도했죠. ‍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하지만 핵심은 간단합니다. 과학적인 견지나‍ 영적인 견지에서 볼 때 ‍『뿌린 대로 거두리라』‍ 무엇을 원하든 ‍그걸 심어야 하고‍ 그걸 창조해야 하고‍ 그걸 지켜나가야 하고 ‍그걸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평화를 원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동물 왕국에, ‍이 행성을 공유하는 ‍존재에게, 우리에게‍ 무해한 존재에게‍ 평화를 줘야 합니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 이는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과학적이고 ‍보편적인 법칙입니다. ‍이 행성의 다른 존재에게‍ 큰 전쟁의 씨를 뿌린다면 ‍우린 평화를 누릴 수 없죠. ‍가령 동물 왕국이라는 다른 큰 왕국의 주민에게 말이죠. ‍우린 인간 왕국에 속하고‍ 동물 주민은 ‍동물 왕국에 속합니다.‍ 그들은 해를 주지 않는데 ‍우리는 매일, 매분, 매 순간 ‍동물 주민과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들을 학대하고 죽이고‍ 가둬 둡니다.‍ 온갖 잔인한 방식으로 ‍동물 주민을 살해합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볼 때 ‍평화나 행운을 줄 수 없죠. ‍기후변화 역시‍ 과학적으로 보면 ‍동물 주민을 죽이고‍ 학대하는 방식과‍ 관련 있습니다.동물 주민을 사육하는 ‍그런 산업의 과정에서‍ 주범이 만들어지니까요. 메탄가스가 기후변화의 ‍최대 원인입니다.‍ 모두가 그 사실을 알죠.

‍그러나 희소식이 있습니다.‍ 메탄은 지구를 덥게 하는 ‍다른 많은 유독 가스보다 ‍수명이 짧습니다.‍ 그러니 메탄을 제거하면 ‍이 행성은 ‍빠르게 식을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평화를 찾고 문제가 되는, ‍가령 이산화탄소 같은‍ 다른 가스에 대처할‍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존층을 ‍고칠 수 있죠. ‍우리 행성에 필요한‍ 많은 일을 하면 됩니다. ‍집이 망가졌으면 서둘러‍ 수리해야 하는 것처럼요. ‍그런데 우리가 비건이 되어‍ 동물 주민을 죽이지 않으면 ‍메탄가스가 방출되지 않아 ‍우리 행성이 식을 겁니다.

[...] 결론은 아주 간단합니다.‍ 비건이 되고 평화를 이루고‍ 선행하면 됩니다.‍ 아니면 그저 비건만 되어도‍ 여러분의 소망을 모두‍ 이룰 것이며 자기 삶이 ‍더 좋아진 걸 느낄 겁니다.‍ 천국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내린다는 걸 ‍직접 보고, 받고, ‍느끼고 알 것입니다.‍ 신의 사랑을 직접 ‍감지할 겁니다. 그저 듣거나‍ 말만 하는 게 아니고요. ‍부디 날 믿으세요. ‍비건이 되면 ‍모든 게 잘 될 겁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어디를 가든 가져갔던 ‍또 다른 그림은 ‍『세례자 요한』입니다. ‍원래 이 그림에는 제목이 ‍없었지만 사람들은 ‍그림 속 인물이 왼손에 들고 있는 십자가와 ‍그 옷차림 때문에 ‍세례자 요한을‍ 묘사한다고 추측했습니다.‍ 그런데 세례자 성 요한은 ‍흔히 주름진 얼굴과 ‍남루한 옷차림으로‍ 피곤함과 엄숙함을 ‍드러낸 모습으로‍ 그려지며 이는 광야에서‍ 기쁜 소식을‍ 성실하게 전하면서 겪은‍ 고난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이 걸작에서 ‍다빈치가 그린 초상은 ‍다른 특성을 묘사합니다.

그림 속 배경은 ‍칠흑같이 어두워서 ‍우리는 즉시 그의 얼굴을‍ 주목하게 됩니다. ‍보면 볼수록 이 인물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지만 얼굴에서‍ 젊음이 뿜어져 나오기에 ‍보는 이에게 ‍다빈치 그림의 특징인 ‍수수께끼 같은 미소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 인물의 이마가 ‍가장 밝은 부분이며‍ 빛은 얼굴에서 맨 살인 어깨로, 다시 위를 향하는 ‍손가락으로 자연스럽게 ‍시선을 이끕니다.

‍빛과 어둠의 뚜렷한 ‍대비가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합니다.‍ 무지한 세상에서 ‍하나님만이 유일한 ‍빛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배경의 어둠은 ‍무지와 소멸과 ‍종말을 나타냅니다.

‍돌돌 말린 곱슬머리는 ‍홍수와 함께 올 ‍급류를 상징한다고 ‍시사됩니다. ‍다른 관점은 나선형 ‍곱슬머리가 우리 유전자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따라서 머리카락은 ‍우리 유전자에 신의 불꽃 ‍즉 우리 안에 신이‍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얼굴은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실 ‍구세주가 남성도 여성도 ‍아님을 보여주는데, ‍우리 영혼은 성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수수께끼 같은 미소는 ‍하나님을 알고 그 사랑의‍ 가르침을 따라야만 ‍내면의 평화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인물의 ‍내적 인식을 전합니다.‍ 천국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신은 오직 한 분이며 ‍신을 통해서만 ‍이 어두운 세상을 영원히 ‍떠날 수 있음을 강력하게 일깨웁니다.

기후변화의 과학적 증거와‍ 그 해결책에 관한 ‍모든 자료는 ‍칭하이 무상사님의 책 ‍『위기에서 평화로』에‍ 있습니다.‍‍ 무료로 다운받으세요.‍ Crisis2Peac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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