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모세스 벤 마이몬 랍비의 저서 『혼란스러운 자를 위한 안내서』 2부 28장과 32장을 계속 소개합니다. 이 유대인 철학자는 히브리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과 신이 하신 완전한 일을 뒷받침하는 더 중요한 구절에 대해 사색합니다.
28장
하나님이 하신 일은 더하거나 덜할 것도 없이 가장 완전하며, 영원히 똑같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들에 변화를 초래할 어떤 것이 존재함은 불가능합니다. 이 구절의 끝에서 솔로몬은 자연의 법칙에서 예외인 것의 목적이나 그들 안의 변화에 대한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심(기적을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분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함이다』
이어지는 구절은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이것은 하나님이 우주의 영속성과 계속성을 원한다는 관념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은 더할 것도 뺄 것도 필요 없이 완전하다는 사실을 인간 가운데 가장 현명한 모세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반석, 하시는 일마다 완전하다』 (신명기 32장 14절)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과 창조는 가장 완전하며, 어떤 흠이 없고 넘치는 것도 없으며 불필요한 것도 없습니다. 또한 창조물을 위한 하나님의 모든 법칙과 그것을 통한 영향은 그대로 완전하며, 하나님의 지혜의 결과입니다.
32장
예언에 관한 많은 의견은 우주의 영속성이나 비영속성에 대한 의견만큼 많습니다. 신의 존재가 증명됐다고 믿는 이들은 우주가 영원하냐 아니냐는 문제에 대해 그들이 취하는 견해에 따라 3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언에 대한 3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1. 예언을 믿는 사람들과 심지어 유대교인 가운데 이렇게 생각하는 무지한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에 드는 어떤 사람을 선택해 예언의 영으로 영감을 주어 사명을 맡긴다. 그 사람이 현명하거나 어리석거나, 늙거나 젊은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그 사람은 어느 정도 도덕적이면 된다」 이런 이들은 그나마 하나님이 악한 인간에게 그분 영으로 영감을 주었다고는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미리 그 사람의 방식을 개선하지 않는 한 이것이 불가능함을 인정합니다.
2. 철학자들은 예언이 오직 연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완전한 인간이 가진 특정한 능력이라고 주장합니다. 비록 전체 인종이 그 능력을 공유하긴 하지만 개인의 결함 있는 기질 때문에, 또는 다른 외부적인 원인에 의해 각 개인에게 완전히 계발되지는 않습니다.
한 부류가 공유한 모든 능력도 이와 같습니다. 그것은 일부 개인에게만 완전해지는 것이지 전부가 완전해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부류의 몇몇 개인은 그 능력이 완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만약 완전함이 오직 매개자에 의해 생길 수 있는 성품이라면 그러한 매개자가 존재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무지한 사람이 예언자여야 한다거나, 저녁에 예언자가 아니던 사람이 이튿날 아침에 뜻밖에도 자신이 예언자인 것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마치 무심결에 예언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듯 말입니다. 하지만 만약 어떤 사람이 지적 능력, 도덕적 능력, 그리고 또한 가능한 한 상상력이 지금 묘사하는 방식에서 완전하다면 그는 예언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언은 인간의 타고난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예언 능력을 갖춘 사람이 그 능력을 얻지 못한 채 스스로 그 능력을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마치 건강한 체질을 가진 사람이 음식을 잘 먹으면서도 음식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같습니다.
3. 세 번째 견해는 성서에서 그것을 가르치며, 유대교의 원리 중 하나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를 제외한 모든 점에서 철학자들의 의견과 일치합니다. 우리가 믿는 것처럼, 예언 능력이 있고 스스로 준비했더라도 그가 예언을 실제로 하지 않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그에게 그 능력의 사용을 금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일 겁니다. 내 의견으로는 이 사실은 다른 기적처럼 예외적이며, 같은 방식으로 행해집니다. 자연의 법칙에 따르면 올바른 체질을 가진 모든 사람은 예언자가 되어야 하며, 교육과 훈련에 관련하여 적절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도덕적이고 이성적인 능력의 준비와 완성이 본질적인 조건이라고 우리의 현자들은 똑같이 말합니다. 『예언의 영은 현명하고 강하고 훌륭한 사람에게만 머뭅니다』 예언자의 아들들은 끊임없이 준비에 몰두했습니다. 자신을 준비한 이들도 여전히 예언자의 역할에서 방해가 있었습니다.
역사에서 네리야의 아들 바룩은 예레미야를 따랐으며, 예레미야가 그를 준비시키고 가르쳤으나, 예언을 위한 그의 바람은 헛되이 되었습니다. 『나는 탄식으로 피곤하여 평안을 찾지 못하도다』 그러자 예레미아를 통해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제 큰일을 찾고 있느냐? 그만두어라. 여호와인 나의 말이다』 (예레미아 45장 5절) 어쩌면 여기서는 바룩에게 예언을 『큰일』이라고 묘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물론 유대인 현자의 글의 수많은 구절에서 예언하는 사람과 예언의 시기는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으며, 오직 가장 좋은 자와 가장 지혜로운 자만을 선택한다는 원칙을 뒷받침합니다. 우리는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은 이 명예에 맞지 않다고 봅니다. 그런 사람이 예언을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배움과 훈련 없이는 예언이 불가능합니다.
그것이 가능성을 만들지만, 그 가능성이 현실로 바뀔 것인가는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예레미야 1장 5절의 말씀에 현혹되면 안 됩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서 짓기도 전에 내가 너를 선택하고, 태어나기도 전에 너를 거룩하게 구별하였다』 모든 예언자가 그러하기에, 그들은 존재하기 시작하면서 육체적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또 다음과 같은 예언에 현혹돼서는 안 됩니다.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다』 이 예언에는 예언의 의미가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시를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꿀 것이다』
또한 예측이나 추측, 또는 정확한 추론에 의해 알려지지 않은 것을 계시하는 모든 사람을 예언자로도 부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바알이나 아세라의 예언자를 언급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예언자나 꿈으로 점치는 사람이 나타난다면』등 (신명기 13장 1절)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시나이산에서 일어난 이 계시에서 모두 큰불을 보았고 무서운 천둥소리를 들었으며, 그 천둥소리는 엄청난 공포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서 마땅한 자격을 갖춘 사람만이 능력에 따라 각자 예언적 영감을 얻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하십니다.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함께 여호와께 올라오라』 그 말씀에 따르면 모세가 예언을 가장 높이 들었습니다. 『너 모세만이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라』 아론은 모세 아래이며, 나답과 아비후는 아론의 아래이며, 나답과 아비후의 아래엔 70명의 장로들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완성 정도에 따라 그 아래로 자리합니다. 성현도 같은 말씀을 합니다. 『모세와 아론에게는 각자의 자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