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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인도하는 성공한 난민과 이민자, 다부작 중 13부: 조셉 퓰리처 - 현대 미국 신문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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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어린 조셉은 개인 교사를 두고 불어와 독일어를 배웠습니다. 11살 때 조셉은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가족은 파산했습니다. 조셉은 군인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웨이터로 일하던 조셉은 도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도서관에서나 체스를 둘 때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곧 독일어 신문 기자로 일자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후 다른 신문을 인수하고 그의 첫 신문과 합병하여 『세인트루이스 포스트 디스패치』를 만들었습니다. 1883년 그는 가족을 뉴욕으로 이사시키고 『뉴욕 월드』라는 신문을 인수했습니다.

1884년 퓰리처는 미국 하원의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곧 자신의 진정한 열정과 함께 국가에 봉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신문을 통해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1년 후 의회를 그만두고 『뉴욕 월드』로 돌아왔습니다. 자연재해, 범죄, 스캔들은 모두 신문 판매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추적 보도와 사기 및 속임수의 폭로가 『뉴욕 월드』의 중추였습니다.

1911년 세상을 떠난 그는 자신의 언론 유산이 먼 미래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유언장 조항을 만들었습니다. 우선 그는 콜롬비아 대학에 언론 대학원 신설을 위한 기부금을 남겼습니다. 유언장에서 그는 또 돈을 남겨 그의 이름이 가장 많이 연상되는 상, 퓰리처상을 만들었습니다. 퓰리처상은 매년 조사 보도 및 공공 서비스 분야를 포함해 저널리즘의 가장 뛰어난 사례를 기리며 수여됩니다. 예술 분야도 수상되는데 소설, 시, 드라마 등의 영역에서 작가에게 상을 수여합니다. 조셉 퓰리처의 가장 오랜 유산은 미국인을 신문 독자의 나라로 만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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